유월 초이지만 기온이 너무 높다. 오늘 낮은 30도를 넘었다. 창문을 열지 않으면 방은 너무 덥다. 네이버 스페인어사전의 식물 뜻풀이 검증을 언제 다 마칠 수 있을까.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한다면 며칠에 끝날 수 있지만 혼자 하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꿀풀과(순형과) 단어는 검증을 마쳤다. 29개의 이름을 수정했다. 이들 모두 블로그에 올릴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게시할 것인데, 오늘은 sándaldo '물박하'에 대한 글을 올렸다. 사진은 직접 찍은 것이어야 하는데, 여기저기 찾아 출처를 철저하게 밝히고, 사진 링크를 첨부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사진 저작권자들에게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방구석 검증을 그만두고 도심을 벗어나 산과 들과 물가를 찾아 내 눈으로 관찰하고 싶지만, 마음 대로 할 수 없다. 혼자 다니기 어렵다. 늘 같이 가야 하는데, 그녀는 늘 다른 일로 피곤하고 바쁘다. 훌쩍 혼자 가면 되지만, 갔다 오면 맞닥뜨릴 부루퉁한 얼굴과 다그칠 그녀를 생각하니 안 가는 게 옳다.
'물박하' 글을 마치고 박하속은 아니지만 '쓴박하 marrubio'(한국에 없는 종)'에 대해 블로그 글을 써다 말고 외출 준비를 했다. 잘 나오던 텔레비전이 며칠 전부터 말썽을 부린다. 월드컵도 오는데 새로 구입해야 한다. 꼬르떼 인글레스 백화점보다 일반 매장에 가기로 했다. 발렌시아대학교가 있는 블라스꼬 이바녜스 거리의 밀라르 Milar 가전제품 가게이다. 퇴근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루사파로 갔다.
조금 일찍 나갔다. 가로수나 화단과 화분에 담겨 도시에 갇혀 있는 식물을 보기 위해 평소보다 서둘러 집을 나섰다. 유월 첫날 오후의 열기가 뜨겁다. 저만치 발렌시아 역이 보이는 거리에서 지하도로 내려가 루사파 거리로 올라왔다. 내부 시설을 완성하고 있는 막 지은 호텔과 한참 건축 중인 건물을 지나 수에까 Sueca 거리로 가는 샛길로 접어들었다.
길쭉한 화분에 작은 보라색 꽃이 하늘거린다. 라벤더 같다. 앞에 흰 꽃은 아프리카데이지 dimorfoteca인데, 뒤에 키 큰 이름 모를 관목 앞에 있는데 잘 안 보인다.

자동차 엉덩이 뒤에 놓인 시멘트 화분이다. 아니 화분이 먼저 있었고 자동차가 궁둥이를 디밀고 주차한 것이다.

흐릿하고 칙칙하지만 보라색 꽃을 꽃꼿하게 달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는 톱니라벤더(cantueso dentado)이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톱니가 아니라 끝이 동글동글하다. 학명은 Lavandula dentata L., 1753이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스페인,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와 알제리, 멀리 아라비아반도의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홍해를 건너 동아프리카의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가 원산인 라벤더이다.

cantueso dentado는 alhuecema rizada(문자 그대로 뜻, 잎이 고불고불한 라벤더)라고도 한다. 둘 다 스페인왕립술원 스페인어사전(DRAE)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꽃을 근접으로 잘 찍어보려고 했지만 노력과 기술 부족으로 초점이 맞지 않아 희미하게 찍혔다.

그만 보고 수에까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이번에는 화분 하나에 모두 톱니라벤더이다. 보라색 꽃을 단 것과 시들었는지 일부 꽃들이 누렇다.

까사 아마데오 Casa Amadeo라는 식당 옆에 놓인 화분이다. 이 식당 테라스 자리에서, 4년 전인가, 혼자 점심을 먹었다. 메누 델 디아(menu del día 정식, 세트 메뉴)였는데, 첫 요리는 기억이 나지 않고 주음식(segundo)은 멸치튀김 boqueron frito을 선택해 먹었던 것 같다. 후식 postre는 끄레마 까딸라나 crema catalana이었던가. 커피까지 마셨다. 관광객 위주의 식당이라 맛은 그저 그랬고, 전부 14유로 정도이었던 것 같다. 커피는 후식 값에 포함이 안 되는 여느 식당처럼 따로 지불해야 하는 식당이다.

유월이면 한참 꽃을 피울 때인데 말라 죽어 가는 꽃은 왜 그럴까. 물이 부족한가. 테라스 자리에 앉은 손님들 맥주라도 부었는가. 담배 연기에 찌들었는가. 톱니잎을 부득부득 갈며 견디고 있다.



테라스에 앉아 백포도주를 홀짝거리는 금발의 아가씨 둘이 사진을 찍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봐서 오래 있지 못하고 또 걸었다. 수에까 거리로 가는데 어떤 가게에서 로살리아의 <La perla 진주, 뒷통수 때리는 녀석> 헤어진 옛 애인 라우 알레한드로(Rauw Alejandro)를 돌려깐 것이라고 짐작되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좋아했던 그 남자를 un ladrón de paz 평화를 깨는 도둑놈이라고 칭하면서 Es un experto en la manipulación 가스라이팅의 전문가이고 un terrorist emocional 감정 테러리스트이고 아무도 믿지 못할 nadie se fía 사람이라는 노랫말이 귓전에 넘실거리는 동안 사거리 광장에 도착했다.
다른 식당 앞에 다른 시멘트 화분에 파초와 보라색 꽃대를 올린 다른 식물이 있다.

두 화분의 톱니라벤더보다 상태가 좋은, 잎이 푸릇푸릇한 톱니라벤더가 사거리에 있다.


꽃을 가까이에서 찍었는데 여전히 초점이 맞지 않다. 프랑스라벤더(cantueso, Lavandula stoechas L.)의 꽃처럼 크지 않지만 벌과 나비를 끌어들이는 꽃잎같이 생긴 불임성 포엽의 가짜 꽃이 있다.

암술과 수술이 없는 보라색 포엽 아래 진짜 꽃이 하나 피었다. 흰색에 푸른빛이 돈다. 아래에 다른 꽃들은 곧 망울을 터뜨릴 기세이다. 그때는 제대로 된 사진기로 선명하게 촬영을 하면 좋은데.

화분이 놓인 길 건너 이층집(piso primero) 창문 아래 '옷본(patron)'으로 배우는 의상제작공방(esculea taller corte y confección) 광고판이 있다. 스페인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지상에 있는 한국의 1층은 0층이고, piso bajo라고 하고, 한 번 올라가면 우리처럼 2층이 아니라 1층(primero)이다.


화분 바로 옆에 바의 테라스(terraza)자리에 큼직한 흰 파라솔, 발렌시아의 맥주 뚜리아 TURIA 상표가 새겨진 파라솔이 펼쳐져 있다.

그녀를 만나기 10분 전이다. 약속된 버스정류장 쪽으로 가로수가 푸른 거리를 따라 발밤발밤 발을 옮겼다.

프랑스라벤더 cantueso https://valenica.tistory.com/283
넓은잎라벤더와 좁은잎라벤더 espliego https://valenica.tistory.com/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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