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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닭볏나무 ceibo 콩과 닭볏나무속

by 엣센스 스페인어사전 뜻풀이 수정 2026. 6. 5.

날씨가 지글지글 볶았다. 어제 주립도서관으로 갔다. 신문도 볼 겸 8년 전에 표지만 보고 대출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벽돌책을 빌리려고. 스페인의 시인이자 비평가, 기예르모 데 또레(Guillermo de Torre, 1900-1971)가 지은 ≪아방가르드 문학사 Historia de las literaturas de vanguardia≫(1965)이다. 또레의 부인은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의 누이동생 노라 보르헤스였다. 

20세기 초반을 장식했던 아방가르드, 전위예술, 미래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이미지즘, 울뜨라이스모, 실존주의, 문예주의, 구체주의, 신사실주의, 객관주의 등 19세기 리얼리즘을 비틀자고, 맞서자고, 버리자고, 무너뜨리자고, 넘자고 외쳤던 모더니즘 문학의 개론서 같은 것이다. 

 

기예음 데 까스뜨로(Guilleum de Castro) 거리의 출입구를 지나가서 도서관 정원으로 들어갔다. 발렌시아주립도서관은 1409년에 문을 연 발렌시아병원을 재단장한 것이다. 세 개의 아치는 병원의 정문이었는데 1960년대 병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건물과 구조물 일부를 철거하며 이곳으로 옮겨 도서관 정원의 출입구 역할을 한다. 

정원에는 로마 시대, 이슬람 시대, 고딕 및 르네상스 시대의 원주와 석조 부재가 전시되어 있다. 오른쪽에 말라 죽은 잎을 수염처럼 길게  달고 있는 워싱턴야자나무 뒤의 대추야자나무의 잎 뒤 뾰족 지붕이 도서관이다.  

도서관 정문 쪽으로 가는데 붉은 꽃을 피운 나무에 발걸음이 멈추었다. 

오른쪽 아래 검은 구멍은 도서관 정문이다. 

네이버(엣센스) 스페인어사전이 우리말 뜻풀이를 하지 않은 ceibo이다. ceibal은 'ceibo의 숲'이지만 진작 ceibo는 한국어 뜻풀이 대신 위키낱말사전의 영어 설명과 학명만 있다.

ceibo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가 원산이고, 꽃이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국화인 나무이다. 관상용으로 도서관 정원에 심었다. 새빨간 꽃이 눈뿌리를 확 잡아당긴다. 

선홍색 꽃이 수탉의 볏을 닮아 학명의 종소명은 crista-galli(크리스타-갈리), '볏', '투구의 장식'이란 뜻의 라틴어 crista와 수탉 gallus의 소유격 galli이다. '크리스타 갈리'는 수탉의 볏이다.

속명 Erythrina(에리스리나)는 '붉은색'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ἐρυθρός(에뤼스로스 erythros)에서 유래했다. Erythrina crista-galli L., 1753은 '닭볏처럼 붉은 꽃이 피는 나무'란 뜻이다.  

스페인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DRAE)이 정의했듯, ceibo의 총상꽃차례로 달린 "꽃은 선명한 붉은색이고 꽃잎이 5장이다(sus flores de cinco pétalos, rojas y brillantes)". 꽃잎이 5장이라고 했지만 골무나 모종삽처럼 길쭉하고 큰 꽃잎 하나뿐인 것 같다. 이렇게 아래로 뻗은 큰 꽃잎은 기판이고 암술과 수술을 감싼 긴 원통형은 사실 꽃잎 2장이 합져진 용골판이다. 나머지 2장은 날개 익판(alas)으로 아주 작은 데다 꽃받침 안에 숨어 있다. 아래 사진에는 익판이 보이지 않는다. 

꽃받침은 꽃받침 조각들과 서로 붙어 있어(gamosépalo) 흰색이 비치는 붉은색으로 작은 모자나 종처럼 생겼다.

수술은 10개인데, 1개는 분리되어 있고 9개는 수술대가 서로 합쳐진 수술체(androceo gamostémono)이다. 암술군은 단심피로 서로 합쳐진 수술들 사이에 있다. 

줄기 껍질은 회갈색으로 세로로 골이 있다.

우리나라에 없어 한국어 명칭이 없지만 학명을 고려하여 '닭볏나무'로 번역했다. ceibo는 영어로 cockspur coral tree인데, coral은 '붉은색'이고 cockspur는 수탉의 며느리 발톱이다. 수탉의 볏 대신 발목 위에 튀어나온 며느리 발톱에 비유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비둘기가 나무에 앉으려고 한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의 단편 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 Funes el memorioso≫(1942)의 주인공 푸네스가 떠올랐다. 그는 나뭇잎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 각각의 잎을 받아들였던 지각과 상상까지도 낱낱이 기억한다. 망각하지 못하고 모든 걸 기억하면, 축복이 아니라 불행인데, 그것도 지각한 것과 지각에 동반된 상상까지 세세하게 다 기억하니, 늘 구체적인 생생함으로 매 순간 머리에 쥐가 났거나 마음이 콩 볶는 듯했을 것이다. 더러 잊고 희미해지고 지워지고 때도 묻고 해서 두리뭉실하게 일반화하고 모호하더라도 추상화하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은 저주일 것이다. 

 

"En effcto, Funes no sólo recordaba cada hoja de cada árbol de cada monte, sino cada una de las veces que la había percibido o imaginado." "사실 푸네스는 각 산마다 있는 나무 하나하나의 잎사귀 하나하나를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 잎을 지각하거나 상상했던 매 순간까지도 죄다 기억하고 있었다." 

 

저주를 피한 것인지 기억력이 닭대가리인지, 어제 본 ceibo 닭볏나무, 잎 뒷면 색이 기억나지 않는다. 앞면처럼 녹색이든가 희끗한 재색이 비친 녹색이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