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3.1 절 일요일 아침이다. 한국은 지금 저녁 7시이지만 여기 스페인은 오전 11시이다. 3월이 왔다. 라스 파야스 Las Fallas(발렌시아어 Les Falles, 3.15-19)의 축제가 있는 달이 시작되었다. 거리에 조형물 파야가 설치되어 19일 밤에 불에 타기 전까지 축제가 열리는데, 사실 축제는 2월에 벌써 막을 올렸다. 시청 앞 광장은 2월 중순에 칸막이가 설치되어 마스끌레따(mascletà 발렌시아어)라는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는 폭죽을 위해 준비가 되었고 시내 일부 가게 앞에는 폭죽을 본뜬 장식품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거리 광고판과 버스 정류장 광고판은 파야 축제를 알린다. 역 근처의 어떤 길목에는 부뉴엘로 빵과 추로 가판대가 들어섰다. 2월 마지막 일요일 지난 2월 22일 저녁에는 매년 그렇듯 축제가 시작을 알리는 라 끄리다 La Crida(발렌시아어로 부름, 초대)가 세라노 탑(중세 발렌시아 성의 출입문)에서 열렸다. 파야 여인 즉 파야 아가씨(fallera mayor)가 '파야 만세 Vixca les Falles!'라고 외치고 불꽃놀이가 있었다. 거리에는 작은 폭죽 petardo 뻬따르도를 터뜨리는 굉음과 화약 연기가 19일까지 도시 골목을 매캐하게 덮는다. 동네 또는 구역마다 있는 파야 단체의 밴드와 이 단체의 행진도 있다. 15일에 조형물 파야를 설치하는 라 쁠란따(La Plantà)가 있고 16-18일까지는 발렌시아 성모께 파야 단체가 헌화하는 오프렌다 데 플로레스(Ofrenda de Flores) 행진이 흥겨운 밴드와 함께 열린다. 19일 밤에는 조형물을 불에 태우는 라 끄레마(La Cremà)로 축제가 막을 내린다. 파야 단체가 설치한 조형물에 등급을 매겨 시상을 하고 상패와 깃발을 조형물 앞에 자랑스럽게 전시한다. 파야 조형물을 보는 것은 흥미롭지만 인형이나 설치물 앞에 있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의 풍자 문구를 읽는 것도 재미가 솔솔하다. 루사파나 다른 거리에 설치된 전구가 발하는 현란한 빛과 무늬도 볼 만하다. 지난 몇 년간 파야 축제만 되면 날이 궂어 비가 뿌렸다. 올해도 그럴 조짐이 보이는지 오늘은 잔뜩 끄느름하다. 멀리서 빵빵 작은 폭죽 터지는 소리와 밴드의 음악 소리가 그치지 않는 일요일 아침 11시 30분이다. 커피 한 잔 더 마시고 자주쇠채아재비, 샐서피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주쇠채아재비를 이야기하면서 높임말을 쓰지 않기도 했다. 독자 여러분을 존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설명문의 '~이다'는 반말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객관화 어법 또는 문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실 이 글은 독자 여러분보다 필자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라서 경어를 쓰지 않는다. 본인과 독백을 하면서 왜 게시를 해서 읽도록 하냐고 나무라시겠지만, 그 참 이상한 관종이라고 하실 수 있지만, 그러시면 전 어쩔 수 없지만, 굳이 변명을 드리자면 고백체 글이라고 생각해 주시길 부탁드리는 바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 수기≫가 고백체이듯.
자주쇠채아재비는 처음 듣는 말일 것이다. 이 이름은 국립생물자원관과 국가표준식물목록 등 생물 전문 기관의 정식 명칭이 아니다. 필자가 명명한 이름이다. '자주'는 자주색의 준말이고 '쇠채아재비'는 국화과 쇠채아재비속의 식물로 우리나라의 자생식물이 아니라 유럽과 서남아아시가가 원산의 귀화식물이다. '쇠채'를 닮아서 '쇠채아재비'인데, 쇠채라는 명칭은 가늘고 길게 쭉 뻗은 줄기가 단단하고 탄력이 있어 소를 때리는 채찍 같아 유래한 이름이다. 쇠채아재비가 어떻게 유럽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토종 쇠채와 닮았기 때문에 '-아재비'라는 접미사를 달고 있다. 한국 땅에 정착한 쇠채아재비는 꽃이 노란색이지만 자주쇠채아재비는 이름 그대로 꽃이 자주색이다. 우리나라에는 없고 유럽과 아시아 일부의 자생식물이다.

https://www.gbif.org/occurrence/5086590427
오른쪽 자주쇠채아재비의 사진은 GBIF(세계생물다양성정보기구)의 koen debouck이 프랑스에서 촬영한 것이다. 쇠채아재비처럼 모인꽃싸개(총포)가 혀모양꽃(설상화)보다 길다. 이 자주쇠채아재비는 '샐서피'로 알려져 있다. 뿌리를 요리에 쓰기 때문에 요리 분야에서 샐서피란 이름으로 불린다.



샐서피는 익히면 은은한 굴 향기가 나서, 영어로 oyster plant라고 하는데, 부드러운 아스파라거스의 풍미가 난다. 스페인에서는 프랑스와 가까운 까딸루냐주에서 구이와 튀김 또는 에스또파도(estofado)라는 스튜 요리나 삐까다(picada)라는 소스에 다른 재료와 함께 맛을 돋우는 데 사용한다. 프랑스에서는 더 다양하게 사용한다. 우유나 생크림과 함께 갈아 아주 부드러운 수프나 퓌레로 먹거나 고기나 생선 요리에 곁들여 먹거나 베샤멜소스와 치즈를 얹은 오븐 구이 그랑탱이나 자주쇠채아재비의 뿌리를 설탕과 버터 그리고 육수로 졸인 버터 글레이징으로도 먹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AFzdD83yw9k
식물 소개 책자나 정부 부처에서도 샐서피란 명칭이 굳어 버렸다.


이런 샐서피에 가려서 '자주쇠채아재비'란 이름이 설 자리가 없겠지만 더 늦기 전에 외래어가 아닌 이 식물의 특성을 반영한 이름을 지었다. '샐서피'는 영어 salsify의 발음을 차용한 말이다. 영어공화국답다. 스페인어로 salsifí이다. 영어나 스페인어는 어원이 같다는 말이다. 스페인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DRAE)은프랑스어 salsifis에서 유래했고 이 프랑스어는 이탈리아어 sassifrica에서, 이 이탈리아어는 라틴어 saxifrăga('바위를 깨는 것'이라는 뜻)에 기원이 있다고 했다. saxifrăga는 바위틈에서 자라서 '바위초'로 불리는 범의귀가 속한 범의귀과 명칭인데 국화과의 샐서피가 긴 뿌리가 단단하게 땅을 파고 들기 때문에 이름을 빌린 것이다. 스페인왕립학술원 스페인어사전(DRAE)은 꽃잎이 자주색(corola purpúrea)이고 방추형의 뿌리는 하얗고 연하며(raíz fusiforme, blanca, tierna) 식용한다(comestible)고 했다.

자주쇠채아재비 혹은 샐서피를 네이버(엣센스) 스페인어사전은 생소한 식물 '선모(仙茅)'라고 오역했다.

선모는 국화과가 아니라 수선화과나 백합과로 분류했다가 최근에는 하이폭스과로 재분류된 Curculigo orchioides라는 식물로 검은 뿌리를 약으로 사용한다. 중국 남부 등에 자생하고 우리나라에는 없어 국립생물자원관 등에 등재되지 않은 식물이다.

네스(엣스)의 이 오류는 영어사전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가령 YBM 영한사전은 salsify를 '선모'라고 했고 동아출판과 슈프림도 마찬가지이다. 교학사와 옥스퍼드는 비유적으로 '서양 우엉'이라고 했다. 슈프림 영한사전은 "선모(仙茅)(Tragopogon porrifolius 그 뿌리는 식용; 맛이 비슷하므로 oyster plant 또는 vegetable oyster라고 불림)"라고 하며 학명까지 적으며 떳떳하게 '선모'라고 오역했다.

영어사전이 어떤 자료를 보고 '선모'라고 오역하고 이 사전을 참조한 엣스는 다시 '선모'라고 오역을 재생하고 프랑스어사전도 선모라는 오역을 확대 재생산한다.

이런 오역의 악순환 고리를 끊은 것은 한국어 위키백과이다. 샴페인을 터뜨리기 전에 한 발 물러서 생각해 보자. 위키백과는 '산엽파라문삼'이라고 했다.

'산엽파라문삼'이란 기괴한 명칭은 자주쇠채아재비를 일컫는 중국어 蒜叶婆罗门参을 비판없이 수용한 것이다.

이 요상한 이름 산엽파라문삼도 확대 재생산되어 소비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민족의학신문'이란 매체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식물원에 대한 기사에서 '샐서피'를 얘기하며 'oyster plant 굴 식물'을 언급하고 '산엽파라문삼'이라고 판결을 내리며 학명을 적었다.

산엽파라문삼이란 말은 중국 입장에 본 자주쇠채아재비로 뜻은 '마늘 잎을 닮은 외국에서 온 귀한 인삼 같은 식물'이란 뜻이다. 산엽(蒜叶)은 마늘 잎처럼 좁고 긴 잎이란 뜻이고, 파라문(婆罗门)은 외국에 들어온 귀한 식물을 의미하고, 삼(参) 은 이 식물의 뿌리를 귀중한 음식으로 사용하므로 붙인 이름이다.* (더보기)
* 蒜叶(산엽)은 마늘(蒜) 잎(叶)인데 이 식물의 종소명인 porrifolius(대파 잎을 닮은)를 중국식으로 번역한 것이다 잎이 좁고 길쭉하며 매끈한 모양이 마늘이나 대파의 잎과 흡사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婆罗门(파라문)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 중 최상위 계급인 브라만(brahman)을 음역 한 단어로 서양에서 건너온 진귀한 식물이나 약초에 '파라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있는데, 외래종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参(삼)은 인삼이나 당삼처럼 뿌리를 약용이나 보양식으로 쓰는 식물에 붙는 글자이다. 뿌리가 인삼처럼 굵고 영양가가 높으며, 실제로 약재나 고급 식재료로 쓰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스페인어사전(서스)은 산엽파라문삼을 barba de cabra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는데, 이것은 오용이다. barba de cabra는 문자 그대로 의미는 '염소수염'이지만 장미과의 '눈개승마'이다. 눈개승마의 흰 꽃이 염소의 수염처럼 치렁치렁 늘어져 있기 때문이다. 서스는 salsifí를 등재하지 않았다.

▶눈개승마 barba de cabra - 네스(엣스)와 서스의 번역 오류 https://valenica.tistory.com/66
salsifí 자주쇠채아재비의 학명은 아래 스페인왕립식물원이 게시했듯 Tragopogon porrifollus이다.

Tragopogon (트라고포곤)은 '숫염소'란 뜻의 그리스어 tragos (τράγος)에 '수염'이란 뜻의 pogon (πώγων)이 합성된 말로 '염소수염'이란 뜻이다. 꽃이 지고 난 뒤 씨앗이 영글 때 하얀 깃털들이 뭉쳐 있는 모습이 염소의 턱수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https://www.gbif.org/occurrence/5141020481
종소명 porrifolius (포리폴리우스)는 라틴어의 합성어로, 잎의 모양이 다른 채소와 닮았기 때문이다. porri는 '서양 대파'를 뜻하고 folius는 '잎'을 뜻한다. '서양 대파의 잎'이란 뜻으로 국화과 식물이지만 잎이 대파나 부추처럼 길쭉하고 매끈하며 줄기를 감싼다.

https://www.gbif.org/occurrence/5104470944
salsifí 를 '자주쇠채아재비'라고 명명한 것은 이 식물이 쇠채아재비와 같은 쇠채아재비속에 속하면서 쇠채아재비를 닮았지만 꽃이 자주색이기 때문이다.
요약한다.
- salsifí는 국화과 쇠채아재비속에 속한 유럽과 서남아시아가 원산인 식물이다. 뿌리는 서양에서 식재료이다. 우리나라에는 서식하지 않는다. 학명은 Tragopogon porrifollus이다. 우리나라의 귀화식물 쇠채아재비와 유사하다.
- 네스(엣스)는 salsifí 를 '선모'로 오역했다. 선모는 국화과가 아니라 백합과나 하이폭스과의 Curculigo orchioides으로 우리나라에 없다. 네스의 오류는 영한사전의 오류를 이어받은 것이다.
- 요리, 식물 도서, 언론은 salsifí를 영어 salsify 발음을 차용해 '샐서피'라 한다.
- 일부는 중국어를 차용해 '산엽파라문삼'이라고 한다. 이 명칭은 너무 거창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서스는 산엽파라문삼이 눈개승마 barba de cabra를 가리키는 것으로 착각했다.

https://www.gbif.org/occurrence/5938286700
제미나이와 챗지피티에 salsifí의 한국어 이름을 물었다. 자주쇠채아재비가 아니라 엉뚱한 대답을 했다. 제미나이는 학명을 바르게 알려주며 '쇠채아재비' 또는 '서양쇠채폭포'라는 이상한 이름을 댔다. 쇠채아재비는 이미 있는 우리나라의 귀화식물인 학명 Tragopogon dubius인 식물이라서 다시 사용할 수 없다.

'서양쇠채폭포'가 무엇인가 물으니 오타라고 사과한다.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챗지피티도 바른 이름을 대지 못했다. 서양쇠채라고 두리뭉실한 이름을 댔다.

자주쇠채아재비라고 제미나이와 챗지피티가 소개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모른다. 인공지능의 대답이 자료 학습의 결과이듯, 이 글이 언제 제 씨와 챗 씨의 머리에 들어갈지 모른다. 그래서 빠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바로 알려주었다. 둘 다 따로 대화를 하지 않고 제 씨께 '자주쇠채아재비'라고 대답을 해 주길 요청하면서 동료 챗 지피티에게도 좀 알려주라고 부탁을 했다.

제 씨는 1초 2초 만에 답변이 왔다.


▶ 스페인의 자주쇠채아재비 영상(스페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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